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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잔혹범죄사

홍제원(洪濟院)에서 발견된 여자의 시체

기묘담녀 2025. 1. 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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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여자가 홍제원(弘濟院) 길옆에서 죽었으니, 끝까지 핵실하여 실정을 알아서 아뢰라.

 


길가에서 죽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세종 22년 6월, 중국의 사신단이 한양으로 입성하기 전 임시로 묵던 공관인 홍제원(洪濟院) 인근 길가.
그날도 김선비는 새벽 공기를 맡으며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김선비는 벌써 몇 달째 홍제원 인근 기방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얼마 전 우연히 본 기생 향이에게 첫눈에 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선비가 푹 빠져버린 향이라는 아이는 제 품을 함부로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고 그날도 향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처에게는 한 번도 선물하지 않았던 값비싼 노리개까지 구해와 선물했지만 그녀를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모자랐던 모양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멀리서만 향이의 미소를 바라보다 결국 걸음을 돌려야만 했던 김선비의 걸음걸이가 당연히 즐거울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서.. 방 님?"

김 선비 앞에 나타난 여인은 한눈에 봐도 다부진 몸매를 자랑하며 살기 어린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김선비는 그녀의 실루엣을 본 순간 동그랗게 뜬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난한 살림 탓에 집안일을 책임져야 했던 탓이었을까?

그녀의 어깨는 시집올때보다 더욱 다부져 버렸고, 심지어 기다랗고 두꺼운 무언가를 든 그녀의 팔뚝엔 실핏줄까지 튀어나오고 있었다.

 

김선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저손에 걸리면 죽는다.'

김선비는 아내의 살벌한 미소를 보며 뒷걸음질을 시작했고, 아내가 자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 발이꼬이며 그만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서방님..? 어제 어딜 다녀오셨나요?.. 혹시 집에 있던 땅문서도.. 가지고 나가셨나요?"
"히 이익!!"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그 둘의 부부 싸움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넘어진 김선비의 앞에 뼈와 가죽만 남은 여성의 시체가 까맣게 뻥 뚫린 두 눈으로 김선비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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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원 인근 길가에 여성의 시체는 발견된지 5일 만에 정체가 드러났다.

 

좌찬성(정일품, 오늘날의 국회부의장) 이맹균은 세종에게 아뢰기를

"자신에게 계집종이 하나 있는데 자신의 처가 종 하나의 행실을 문제삼아 때리고 머리털을 잘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렸습니다."

 

세종은 이맹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고, 이맹균은 말을 이었다.

"죽어버린 계집종을 하인을 시켜 묻어주라 지시했는데, 며칠 전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말에 하인을 불러 물으니 길가에 바렸다고 합니다."

 

말을 하는 이맹균은 두려움에 떨었고, 이를 듣던 세종은 이맹균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입을 떼었다.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다."

세종의 말 한마디에 좌찬성 이맹균은 고개를 한없이 아래로 떨어뜨려야만 했다.

 


질투가 벌인 사건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시체로 발견된 계집종은 사실 이맹균이 아끼며 가까이하던 사이였고, 그런 이맹균의 행실이 맘에 들지 않았던 그의 아내 이 씨는 계집종에게 극심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젊고 예쁜 계집종과, 이제는 늙어버린 자신의 사이에서 이 씨는 결국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모질게 대했다.
굶기는 건 예사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또 하루가 멀다 하고 매질이 이어졌고 계집종의 몸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이 씨는 계집종이 죽어버리자, 집안 하인 둘을 시켜 길가에 버리도록 시켰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본디 유약한 성격의 이맹균은 모른척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이맹균과 그의 처를 처벌하다.

 

물론 조선 후기쯤엔 자신의 종을 죽여도 종은 재산과 동일한 취급을 받았기에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조선 초기였던 세종 때에는 종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죄가 되었던 모양이다.

 

물론 종을 죽인 것이 그리 큰 죄는 아니었다.

이에대해 영의정 황희는 그를 추핵(*죄인을 심문하고 탄핵함.)하길 간청했고, 사건을 숨기려 거짓까지 고했던 이맹균은 탄핵을 당하고 그길로 귀향을 떠나야만 했다.

 

계집종을 죽인 그의 아내 이 씨는 파혼을 당하고 도성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는데, 이는 이맹균이 죽을 때까지 받아야 하는 형벌이었다.

 


질투의 눈이 먼 범죄, 그 후..

 

이맹균의 사건은 질투에 눈이 먼 아내 이 씨가 저지른 잔혹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맹균의 나이는 70이었으며, 후사도 없었기에 늙은 아내의 질투는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아무리 질투에는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지만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을까?.

이맹균은 결국 귀향을 떠났다 병을 얻었고, 일 년도 안 되어 석방되었지만 결국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망하였다.

세종은 대신들과 의논하며 이맹균의 아내에게 빼앗았던 작첩을 돌려주라 명하는데, 작첩(爵牒)이란 왕이 내, 외명부의 사람에게 내리는 관직에 따른 첩지를 말하는데, 이 작첩은 관직에 오르는 남자의 본처에게도 똑같은 권세를 누리도록 하사하는 것이었다.

세종은 왜 이맹균의 아내에게 작첩을 돌려주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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