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기담

아는척할정도의 얕고 넓은 한국역사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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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잔혹범죄사 78

싸이코패스, 순화군 이보(李𤣰)

사관은 이같이 논한다. 임금도 이를 억제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야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왕자(王子)를 죽이는 것은 진실로 차마 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백성은 무슨 죄인가.선조의 막내아들, 순화군 이보 선조 37년 8월, 순화군의 악행에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는 아비, 선조를 보며 사관은 이렇게 말한다."백성은 무슨죄인가" 선조의 맏이였던 임해군의 악행은 어느정도 알려져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6째아들 순화군은 사대부에게 주로 악행을 하고, 재산을 빼앗던 임해군과는 달리, 주로 가난한 서민들을 상대로 한 악행들로 심지어는 한 고을을 없애버릴 뻔 할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연쇄살인마의 그것과 같았던 행실. 대부분의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들이 그러했듯이, 순화군도 어릴적 그 성품..

김안로의 업보

거듭 탄핵을 받아 길주(吉州)로 유배되었다가 김안로 등의 중상으로 유배지에서 사사(賜死) 되었다. 죽을 때 사자(使者)를 대하여 한참 동안 교서를 보더니 발끈 성을 내며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죄가 아니다.’ 하였다. 그의 잔인하고 악독함은 비단 착한 사류들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군부의 명에 대해서도 항거하였으니 이는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다.’는 말과 다른 것으로 새짐승 만도 못한 것이다.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김안로의 마지막 중종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세를 누리던 김안로, 그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은 이들은 어떤 방식을 써서든 숙청하거나 제거하였다. 중종 32년 5월에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정광필 역시 공격해서 유배를 보냈고, 살아 생전에 자신을 경계했던 남..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된다.

이리하여 나뭇잎의 감즙(甘汁)을 갉아 먹는 벌레를 잡아 모으고 꿀로 나뭇잎에다 ‘주초위왕(走肖爲王)’ 네 글자를 많이 쓰고서 벌레를 놓아 갉아먹게 하기를 마치 한(漢)나라 공손(公孫)인 병이(病已)의 일 처럼 자연적으로 생긴 것같이 하였다.기묘사화 중종 14년, 연산군 축출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진보적 사림파들이 신권 대부분을 장악하고 왕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됨을 느낀 중종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기묘년에 사화를 벌여 조광조를 비롯한 기식등을 극형에 처하고 대부분이 귀향을 가거나 정계를 떠나야 했던 일이다. 선조실록에 기록된 주초위왕의 일 기묘사화와 얶힌 유명한 일화가 바로 주초위왕의 일로, 남곤이 조광조 등에게 유감을 품고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을 적은 뒤 벌레가 갉아먹게 만..

성폭행으로 무고(誣告)하다.

예(禮)를 갖추지 않고 장가든 죄는 《대명률(大明律)》을 상고하니, ‘화간(和奸)한 자는 장(杖) 80대를 처한다.’ 하였으니, 남녀(男女)를 한가지로 죄(罪)주어 이혼[離異]하게 하고사건의 개요 성종 8년, 7월 8일.이심의 처 조씨가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었는데, 전(前) 칠원 현감(漆原縣監) 김주(金澍)가 그녀의 집에 유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의 동복이었던 조식과 조식의 매부 송호가 김주를 강간죄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진짜 이야기 하지만, 이 강간에 대한 신고는 무고죄로 결론이 나는데, 그 이유인즉, 처음부터 김주는 조씨가 마음에 들어, 몰래 중매를 서달라 했고, 그날은 예를 갖추어 그녀의 집에 방문하여 하루를 머문 날이었다. 화간(和奸), 미혼인 남녀가 서로 마음을 ..

숭례문안에서 발견된 죽은 여자아이

지난 26일 사중(司中)에서 좌기(坐起) 할 때에 서부(西部)의 관원이 첩보(牒報)하기를 ‘한 죽은 여아(女兒)가 숭례문 안에 버려져 있다.’고 하기에 신들은 그말을 듣고 지극히 경악하고 해괴하게 여겼습니다. 숭례문안에서 발견된 여자아이 시체 중종 26년, 1월 28일 시강관 허흡이 임금에게 아뢰길."신은 들으니, 숭례문(崇禮門) 안에 나이가 열살 남짓한 사람을, 그 머리를 베어 자루 속에 넣은 채 버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심상히 죽은 사람이라면 귀고리를 단채 죽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도성 안에 있으니 지극히 참혹한 일입니다. 모름지기 오부(五部) 에게 추문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는 저작(著作) 김로(金魯)도 알고 있습니다." 도성안에서 발견된 시체, 그것도 ..

유언비어였을까?

나무를 베는 귀신 소리가 숲 사이에서 나 먼 데로부터 가까이 온다. 인조 15년, 8월 사건이 벌어지다. 상이 하교하기를,"간밤에 포성(砲聲)이 먼 데로부터 가까이 왔는데, 정원 및 병조·도총부가 일찍 아뢰지 않고, 하문한 뒤에도 차비문 밖에 와서 기다리지 않았으니, 일이 매우 놀랍다. 당해 당상을 모두 추고하라." 간밤에 벌어진 일이었다.포성이 들리고, 소란이 벌어졌음에도 병조나 도총부가 알지 못한데다, 알고 나서도 도성으로 모이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었다. 유언비어가 퍼지다. 이 일은, 민가에 퍼지던 유언비어에서 시작되었다고 실록엔 적혀있다.‘나무를 베는 귀신 소리가 숲 사이에서 나 먼 데로부터 가까이 온다.’ 이 소문은 점점 민가에 퍼지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이 불안은 결국 소요사태를 만들고 만다..

十五円五十銭(십오엔 오십전).

十五円五十銭(15엔 50전-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관동지방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지진으로 도쿄와 요코하마등, 당시에도 대도시였던 곳에서 지진으로 발생한 화재와 건물 붕괴로 인해 약 10~14만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사회는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졌고, 이 혼란을 풀어야만 했던 일본인들은 그 증오를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외국인(특히 조선인)에게 돌리기 시작합니다. 유언비어가 퍼지다."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다.조선인들이 방화, 폭탄에 의한 태러 및 강도를 계획하고 있으니 주의하라" 이는, 당시 경찰의 내부문서의 내용이다.당시 사회적으로 팽배했던 조선인에 대한 혐오가 그대로 녹아있는 이 문서는 다른..

박원양의 시신을 치운 죄를 사죄하다.

"경은 문계(問啓)에 대한 비답을 보지 못했는가? 이미 용서하여 주었는데 또 이렇게 버티면서 이때까지 신칙하고 명령한 것을 문득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신하의 분수인가? 다시는 깊이 혐의를 피하지 말고 빨리 명에 숙배하도록 하라." 갑신정변, 그 이후. 조선보다 앞서 대외 개방, 근대화를 통해 국력을 신장시키고 있던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급진 개화파에 참여했던 김옥균, 박영효, 이들은 결국 갑신정변을 일으켜 나라를 뒤엎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 이후, 군에의해(우리나라군이 아닌 청나라군이었지만) 주동자들은 처형되었고, 김옥균의 경우는 망명한 일본에서 암살되어 우리나에 시체로 들어와 효수되었다. 정변이 일어난 지, 몇년 후, 좌승지(左承旨) 어윤중(魚允中)이 상소를 올린다. 상소..

청나라로 보내진 명국인들.

"전일 우리 나라에서 잡아 보낸 자들이 모두 도륙(屠戮)되었는데, 내 또 차마 박절하게 죽을 곳으로 보내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하니, 장차 어떻게 한단 말인가."효종3년, 정의현(旌義縣)에 표류한 중국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정의현(旌義縣)은 지금의 제주의 서귀포지역으로 표류해온 그들은 총 28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삭발을 하고, 그들의 옆에는 고운 비단으로 감싼 시체들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우리는 모두 남경(南京) 소주(蘇州) 백성들로서 일본에 무역하러 갔다가 이제 막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태풍을 만나 바다 가운데에서 배가 부서졌다. 그 결과 1백 85인이 빠져 죽고 다행히 살아남은 자는 겨우 28인인데, 침몰된 재화가 엄청나게 많다." 남경의 백성으로 일..

이씨조선이 망하고, 정씨가 나라를 이끈다. 정감록(鄭鑑錄)

이율이 말하기를, ‘이상한 사람의 말을 들으니, 내년 이후에는 도적들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인데, 북쪽의 도적들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는 나라가 장차 셋으로 갈라진다고 하니, 나는 장차 가족을 데리고 일찌감치 난리를 피하려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이상한 사람의 성명은 무엇인가?’라고 하니, 이율이 말하기를,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번에 신이 하동(河東)에 간 뒤에 비로소 유가(劉哥), 정가(鄭哥), 김가(金哥)의 성을 가진 세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정조가 직접 숙장문에서 김이용과 이율·양형을 친국하다 정조 9년 2월 29일, 숙장문에 나온 정조는 모반사건을 일으킨 김이용과 이율, 양형을 직접 친국하며 나온 증언이다.조선왕조(木子,李)가 망하고 계룡산에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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