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기담

아는척할정도의 얕고 넓은 한국역사지식

728x90

설화 17

붉은수염을 한 귀신, 적염귀(赤髥鬼)

조선전기 학자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붉은 수염을 한 귀신이다.고려의 재상 권씨. 고려때에 권씨성을 가진 이가 그 능력이 출중하여 재상에 자리에까지 올랐다. 권재상이 자신의 아비가 죽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묫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다."이곳이 바로 명당입니다" 당시 권재상의 묫자리를 위해 풍수를 보던 이씨가 말한 장소는 볕이 좋고 풍광이 좋은 곳이었지만 그곳은 이미 다른이의 묘가 있었다. 하지만 재상이라는 그에게 그런건 문제되지 않았다.그는 재상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이의 묘를 파해치려 했고, 묘를 파해지려던 그 날이었다."이놈들! 이곳은 나의 아버지의 묘로, 생전 벼슬을 낮았을지 모르나 항상 위엄있고 굳세어 보통사람이 아니었다!""그런분의 묘를 파해친다면 분명 화를 면하지 못할것이다!"..

조선기담 2025.07.18

조마구는 죽어 모기가 되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해 먹을까? 콩을 볶아 빠작빠작 깨물어 먹을까? 수제비를 해서 후룩후룩 먹을까? 찰밥을 해서 찹찹 먹을까? 아니면 떡을 해서 떠럭떠럭 먹을까?”옛날,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았다. 어느날, 어머니가 일을 나간 아들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을때였다.어머니가 잠시 부엌을 비운사이에 조마구라는 괴물이 들어와 어머니가 짓고 있던 밥을 모두 먹어버리고 말았는데 뒤늦게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어 괴물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녀가 조마구를 후려칠수록 조마구의 몸집은 점점 커지더니 결국 어머니보다 덩치가 커져 부엌에 있던 모든 음식을 먹어치운 뒤, 어머니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그 가죽을 벗겨 나무에 걸어두고 자리를 떠난다. 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들이 비참하게 매달려 있는 어..

부안, 굴바위 설화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굴바위는유문암(流紋巖)이라는 화산암이 풍화를 받아 형성된 천연 동굴이다.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굴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주거지·피난지·저장고 등으로 이용되어 왔기에 그에대한 설화도 많은것이 사실이다. * 지난 달래고개이야기도 일종의 동굴설화이다. 첫번째, 치유의 샘 부안군 우동리에 있는 굴바위는 우동저수지에서 왼쪽 으로 대불사(大佛寺)를 지나 산길을 오르다보면 중턱에서 만날 수 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굴바위 천장에는 ‘옥정’ 또는 ‘참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그 샘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복지개(주발의 뚜껑)이 있었는데 이 뚜껑으로 샘의 물을 떠 마시면 그 어떠한 병이라도 나을 수 있었다고 하며, 특히 나병에 효과가 좋아 전국의 나병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호랑이가 사랑한 남자, 김현감호(金現感虎)

신라 풍속에 매년 2월이 되면 8일부터 15일까지 연 8일 동안 서울 안 남녀가 모여 복을 빌기 위해 흥륜사(興輪寺)의 전각과 탑(塔)을 도는 복회(福會)가 있었다.원성왕 때 화랑 김현이 복회에 참석했다가 염불을 외며 도는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 마음은 김현뿐만이 아니었던지, 처녀도 그에게 호감을 느꼈고 이내 둘은 탑돌이를 마치자마자 으슥한곳을 찾아 관계를 맺고 만다. 관계를 끝낸 처녀가 돌아가려하자, 아쉬웠던 김현은 그녀를 따라가는데, 처녀는 거절하였지만 김현은 그녀를 이대로 놓치면 영영 만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거절을 무시하여 따라간다. 결국 산기슭에 초막에 다다르자, 왠 노파가 나타나 그가 누군지 처녀에게 묻자 그제야 처녀는 모든일을 고하게 되었다. 그녀는 산에 사는 호랑이..

계서야담에 기록된 부자가 되게 해준 선비.

전세계엔 갑자기 부자를 만들어 주는 이야기들이 많다.그 중 하나, 조선 후기 편자 미상의 야담집, 계서야담(溪西野談)에 적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원주에서 인삼장사를 하는 부자, 최씨 어머니 이야기 최씨의 어머니는 과부로, 최씨의 아버지는 최씨를 낳은지 얼마 안되어 죽었다.최씨의 어머니는 당시 모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그랬던것처럼 절개를 지키며 살았는데, 하루는 갑자기 훤칠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자신의 집 대청마루에 올라와 앉아있는 모습에 놀라 묻는다."남의 과부 집에 외간남자가 대놓고 앉아있다니, 무슨일이냐?" 그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귀 뒤에는 금으로 만든 관자(남자들이 머리에 두르던 망간의 부속품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금이나 옥으로 관자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를 붙히고 있었는데 그는 최씨의 어..

조선기담 2025.07.07

바보라 불리던 숙부가 유성룡을 살리다.

징비록(懲毖錄)의 저자 서애 유성룡에 관한 이야기다. 계서야담(溪西野譚)에 적힌 그의 이야기 조선시대 명 재상이라 불리는 유성룡, 그는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올라, 이순신, 권율등을 등용하여 나라를 지킨 인물이다.조선 후기, 야담을 모아둔 책인 계서야담엔 그의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유성룡에겐 바보라고 불리우는 숙부가 한분계셨는데, 그는 콩과 보리도 가릴 줄 몰랐다고 한다.어느날, 그 숙부가 유성룡에게 바둑을 한판 두자며 청하였고, 유성룡은 항렬이 높았던 숙부의 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만다.당시 유성룡은 실제로 조선의 국수(國手)라고 불릴만한 바둑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초반부터 유성룡이 몰리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엔 파둑판의 한쪽 귀퉁이만 간신히 살렸을 뿐, 몰살당..

조선기담 2025.05.14

저승곳간을 채우다, 덕진다리(德津桥)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엔 덕진다리가 있다.전라도 영암의 원님이 갑자기 죽다.영암 원님이 어느날 갑자기 죽어 저승엘 갔다."아직 죽을때가 아닌데, 어찌 저승엘 왔는가?""딸꾹!"염라대왕의 말에 곁에 있던 저승차사가 뜨끔한듯, 온몸이 굳어버렸고, 그 모습을 보던 염라대왕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고 말했다."아직 명이 남아 있으니 자네를 다시 돌려보내겠네, 하지만 우리도 우리나름대로 고충이 있으니 자네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지."자신의 명이 남았다는 말에 자신을 데려온 차사를 힘주어 째려보던 원님은 염라대왕의 말에 고개를 돌려 염라를 바라보았다."내 자네에게 저승의 곳간을 보여줄터이니, 저승에 인정을 배풀고 가시게. 그럼 추후 자네가 다시 저승에 왔을때, 그 정성이 자네의 저승생활에 유리하게 적용..

이 동물은 혹시 "봉"이요?

이동물은 혹시 봉 아니요?난전에서 한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닭을 팔고 있던 닭장수에게 물었다."봉 이라니 이사람아, 이것은 닭이 아닌가? " 끝까지 닭을 보며 봉황이라고 우기는 사내를 보며, 닭장수는 그 사내를 속이기로 마음을 먹고 닭을 봉이라고 이야기하고 비싼값에 팔아버리고 맙니다.  어디서 거짓을 고하느냐!! 그대로 원님에게 그 닭.. 아니 봉을 들고 달려간 사내는 원님에게 그 봉을 바치는데 이를 본 원님은 크게 노하여 그 사내에게 곤장을 칩니다. "아이고 원님 저도 저 저잣거리에 닭장수에게 속아서 산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원님은 닭장수를 부르죠 결국 닭장수는 그 사내에게 닭값의 몇배나 되는 돈을 물어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답니다.사람들은 그사내를 봉이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합니다.   누구..

인문 겉핥기 2025.03.31

두 선비 귀신의 시

야! 최태인이! 니들 여기서 9명이 출발했어!정확하진 않지만 공포영화 '알포인트'에서 일행 중 하나가 사망하자 본부에 무전을 보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죽은 군인은 그들이 찾아야 했던 군인 중에 하나였다는 대답이었다.  도시괴담 중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일행 중 누군가가 귀신이라는 설정이다. 산속 산장에 고립되었는데, 각 모퉁이에서 움직이며 서로의 어깨를 치는 이야기라든지, 수학여행을 갔는데 얼마 전 죽은 친구의 귀신이 사진에 찍힌다든지 하는 이야기 말이다. 조선시대의 야담을 모아놓은 작자 미상의 책 청구야담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남쪽 지방의 선비들이 과거길에 금강(錦江)을 건너 궁원(宮院)을 향하는데, 그중 어디 사람인지 모를 선비 둘이 끼어있었다. 이 둘은 아름다운 달..

조선기담 2025.03.29

일만을 죽여야 살 수 있다.

박엽이 처형을 당하자 군중이 모여들어 관을 부수고 시체를 끌어내어 마디마디 끊었다고 한다.  박엽은 조선 중기 때의 무신이다. 국조방목에는 박엽의 최후가 적혀있는데, 그가 처형을 당하자 백성들이 몰려들어 그의 시체를 끌어다가 사지 마디마디를 다 끊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왜 죽어서도 백성들의 엄청난 분노를 받아야만 했을까?  박엽은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때 평안 감사까지 지낸 인물로 그이 성격이 포악하고 여색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는 자신의 배를 구름모양으로 만들어 띄우고는 마치 신선이 된듯한 기분으로 유흥을 즐겼는데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그의 최후에 대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평소 점술가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점술가는 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일만을 죽..

조선기담 2025.03.08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