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기담

아는척할정도의 얕고 넓은 한국역사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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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을 한 귀신, 적염귀(赤髥鬼)

조선전기 학자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붉은 수염을 한 귀신이다.고려의 재상 권씨. 고려때에 권씨성을 가진 이가 그 능력이 출중하여 재상에 자리에까지 올랐다. 권재상이 자신의 아비가 죽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묫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다."이곳이 바로 명당입니다" 당시 권재상의 묫자리를 위해 풍수를 보던 이씨가 말한 장소는 볕이 좋고 풍광이 좋은 곳이었지만 그곳은 이미 다른이의 묘가 있었다. 하지만 재상이라는 그에게 그런건 문제되지 않았다.그는 재상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이의 묘를 파해치려 했고, 묘를 파해지려던 그 날이었다."이놈들! 이곳은 나의 아버지의 묘로, 생전 벼슬을 낮았을지 모르나 항상 위엄있고 굳세어 보통사람이 아니었다!""그런분의 묘를 파해친다면 분명 화를 면하지 못할것이다!"..

조선기담 2025.07.18

조마구는 죽어 모기가 되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해 먹을까? 콩을 볶아 빠작빠작 깨물어 먹을까? 수제비를 해서 후룩후룩 먹을까? 찰밥을 해서 찹찹 먹을까? 아니면 떡을 해서 떠럭떠럭 먹을까?”옛날,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았다. 어느날, 어머니가 일을 나간 아들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을때였다.어머니가 잠시 부엌을 비운사이에 조마구라는 괴물이 들어와 어머니가 짓고 있던 밥을 모두 먹어버리고 말았는데 뒤늦게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어 괴물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녀가 조마구를 후려칠수록 조마구의 몸집은 점점 커지더니 결국 어머니보다 덩치가 커져 부엌에 있던 모든 음식을 먹어치운 뒤, 어머니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그 가죽을 벗겨 나무에 걸어두고 자리를 떠난다. 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들이 비참하게 매달려 있는 어..

젓가락, 젓가락질.

사신에게 도금한 작은 부처 두 개, 놋주발 두 벌, 놋젓가락 42벌, 놋숟갈 2개, 찻숟가락 2개, 말총 망건 두 벌을 선사하였다.동아시아의 독특한 문화, 젓가락 가늘고 긴 막대라는 뜻의 저(箸)와 비슷한 의미의 '가락'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인 젓가락은 기원전 10세기 황하문명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동아시아의 문화에서 전세계에 퍼진 식기중 하나이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에서 식문화에 맞춰 발전하였는데, 중국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엔 삼국시대에 젓가락이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백제가 일본에 젓가락 문화를 전파한것으로 알려져있는데, 각 나라마다의 식문화 차이로 인해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의 경우, 한국과 일본의 그것에 비해 제일 길고 끝이 뭉툭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이는 주로 입식문화와 식구가 많아 ..

인문 겉핥기 2025.07.16

창귀(倀鬼)- 2화, 호랑이를 이끄는 귀(鬼)

『주역(周易)』에, “구름은 용이 만들고 바람은 호랑이가 일으킨다”고 하였기 때문에 울부짖으면 바람이 생긴다 하는 것이며, 「월령(月令)」에 이르기를 “동짓달에 호랑이가 교미를 시작한다”하였다.창귀의 특징 첫번째, 창귀는 호랑이의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상 희생자를 찾는데, 가족과 인척들 순으로 찾아간다. 때문에 호환을 당한 집안과는 사돈의 팔촌하고도 혼사를 맺지 않는다. 이런 물귀신 행위를 '다리 놓기'나 '사다리'라 한다. 창귀는 이런 교대를 통해 호랑이에게서 벗어난다.두번째, 창귀는 신것을 좋아하여 매실과 소귀나무 열매를 지나치지 못하고 정신없이 먹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창귀를 묶어두는 함정을 파면, 호랑이의 위기 감지 능력이 반감되어 사냥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한다.마찬가지로 소라나 골뱅이도 ..

조선기담 2025.07.15

창귀(倀鬼)- 1화, 안타까운 운명

전라도 태인현(泰仁縣) 사람 이규(李逵)가 갑자기 미친 병을 앓아 스스로 호랑이 귀신이라고 하며 제 아들을 물어 죽였는데, 도신(道臣)이 계문하였다.호랑이에게 죽은 이는 창귀가 된다. 흔히 우리가 아는 창귀에 대한 이야기이다.한국에서는 "홍살이 귀신", 특히 태백지역에서는 조금 더 토속적으로 "가문글기"라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기원은 조선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이다.호랑이가 개를 먹으면 취하고 만약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기 시작하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한 번 잡아먹으면 그 사람은 굴각(屈閣)이란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으며, 굴각은 호랑이를 이끌어 부엌으로 가 솥을 핥게 하는데 핱고있는 동안 부엌의 집주인은 배고픈 생각이 들어 부인이 야참을 해 오게 만든다고..

조선기담 2025.07.14

고래들의 바다, 경해(鯨海)

지난번 운뢰(雲雷)의 비색한 운수 때문에 국가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사나운 고래가 갑자기 달려오니 그 형세가 그물로 제어하기는 어려웠고, 무서운 짐승이 갑자기 날뛰니 누가 소굴로 밀어넣어 막을 수 있었겠는가.고래들의 천국이었던 바다, 동해 예로부터 우리나라 동해는 고래경(鯨)을 붙혀 경해(鯨海)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고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고래의 종류도 다양했고, 크기도 큰 대형고래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는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서 잘 드러나는데 정말 고래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종류의 고래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1899년, 일본 포경선의 일지에도 영일만에 들어서니 귀신고래때가 들어와 있는데 그 수가 수천만이 되었다고 기록될 정도였다. 난폭한 악인을 이르는 말 하지만, 고래가 많았..

인문 겉핥기 2025.07.11

부안, 굴바위 설화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굴바위는유문암(流紋巖)이라는 화산암이 풍화를 받아 형성된 천연 동굴이다.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굴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주거지·피난지·저장고 등으로 이용되어 왔기에 그에대한 설화도 많은것이 사실이다. * 지난 달래고개이야기도 일종의 동굴설화이다. 첫번째, 치유의 샘 부안군 우동리에 있는 굴바위는 우동저수지에서 왼쪽 으로 대불사(大佛寺)를 지나 산길을 오르다보면 중턱에서 만날 수 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굴바위 천장에는 ‘옥정’ 또는 ‘참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그 샘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복지개(주발의 뚜껑)이 있었는데 이 뚜껑으로 샘의 물을 떠 마시면 그 어떠한 병이라도 나을 수 있었다고 하며, 특히 나병에 효과가 좋아 전국의 나병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호랑이가 사랑한 남자, 김현감호(金現感虎)

신라 풍속에 매년 2월이 되면 8일부터 15일까지 연 8일 동안 서울 안 남녀가 모여 복을 빌기 위해 흥륜사(興輪寺)의 전각과 탑(塔)을 도는 복회(福會)가 있었다.원성왕 때 화랑 김현이 복회에 참석했다가 염불을 외며 도는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 마음은 김현뿐만이 아니었던지, 처녀도 그에게 호감을 느꼈고 이내 둘은 탑돌이를 마치자마자 으슥한곳을 찾아 관계를 맺고 만다. 관계를 끝낸 처녀가 돌아가려하자, 아쉬웠던 김현은 그녀를 따라가는데, 처녀는 거절하였지만 김현은 그녀를 이대로 놓치면 영영 만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거절을 무시하여 따라간다. 결국 산기슭에 초막에 다다르자, 왠 노파가 나타나 그가 누군지 처녀에게 묻자 그제야 처녀는 모든일을 고하게 되었다. 그녀는 산에 사는 호랑이..

싸이코패스, 순화군 이보(李𤣰)

사관은 이같이 논한다. 임금도 이를 억제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야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왕자(王子)를 죽이는 것은 진실로 차마 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백성은 무슨 죄인가.선조의 막내아들, 순화군 이보 선조 37년 8월, 순화군의 악행에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는 아비, 선조를 보며 사관은 이렇게 말한다."백성은 무슨죄인가" 선조의 맏이였던 임해군의 악행은 어느정도 알려져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6째아들 순화군은 사대부에게 주로 악행을 하고, 재산을 빼앗던 임해군과는 달리, 주로 가난한 서민들을 상대로 한 악행들로 심지어는 한 고을을 없애버릴 뻔 할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연쇄살인마의 그것과 같았던 행실. 대부분의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들이 그러했듯이, 순화군도 어릴적 그 성품..

계서야담에 기록된 부자가 되게 해준 선비.

전세계엔 갑자기 부자를 만들어 주는 이야기들이 많다.그 중 하나, 조선 후기 편자 미상의 야담집, 계서야담(溪西野談)에 적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원주에서 인삼장사를 하는 부자, 최씨 어머니 이야기 최씨의 어머니는 과부로, 최씨의 아버지는 최씨를 낳은지 얼마 안되어 죽었다.최씨의 어머니는 당시 모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그랬던것처럼 절개를 지키며 살았는데, 하루는 갑자기 훤칠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자신의 집 대청마루에 올라와 앉아있는 모습에 놀라 묻는다."남의 과부 집에 외간남자가 대놓고 앉아있다니, 무슨일이냐?" 그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귀 뒤에는 금으로 만든 관자(남자들이 머리에 두르던 망간의 부속품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금이나 옥으로 관자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를 붙히고 있었는데 그는 최씨의 어..

조선기담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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