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8년,
교관이었던 이상익이라는 자가 당상과 낭청, 즉 정부를 욕 한 죄로 옥에 갇혀 형신을 받는 일로 인해 신하들의 토론이 한창이었다.
"그러니깐, 이자는 사대부를 욕보인 것이며 또한 나아가 주상을 능욕한 것입니다! 또한 그자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기라도 한다는 듯, 옥졸로 하여금 옥에 열쇠를 만들어 외부인을 자유롭게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때문에 옥을 지키는 병사를 형신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임금은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는지 눈두덩을 문지르며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토론하고 있는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이야기는 옥졸의 형신에서 이상익이라는 자를 형신할 것인가, 아닌 가로 번져가고 있었다. 물론 이 논의는 처음도 아니었기에 임금은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었고 그때였다.
영상 홍명하가 지루해 하던 임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대신 벌을 받으려 한 노비
세종 때에 한 선비가 죄를 지어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의 종이 옥졸에게 뇌물을 주며 선비의 부인이 한밤중에 찾아올 테니 만나게 해줄 수 있냐고 부탁하자 옥졸은 종이 건낸 꽤 많은 돈에 그만 만남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그날 밤 나타난 이는 바로 낮에 옥졸에게 뇌물을 주었던 종으로 그 종은 여성의 옷을 입고 쓰개로 얼굴을 가린 채 선비의 부인인 척 연기하며 선비를 만나 선비와 옷을 바꿔 입은 뒤 자신이 대신 옥에 남았다.
그렇게 다음날 형벌을 받기 위해 나온 이가 어제의 그 종임을 알아차린 세종은 "만약 이 종을 죽이면 충성으로 권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를 석방했고, 그 선비는 후에 중요한 관직까지 역임하였다고 한다.
형벌은 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임금은 가벼운 이야기속에 의미를 깨달았다.
홍명하의 이야기는 즉, 형벌의 실행보다는 어짊과 관대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는데 이를 더 깊게 해석해보자면 형벌의 실행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형벌은 그 강도가 심했기에 사람이 죽는 일도 많았고, 심지어 이번 형신은 어쩌면 사대부를 욕보인 이상익이라는 자에 대한 사대부의 화풀이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긴 하지만 자신의 주인을 위해 여장까지 불사하며 자신이 대신 벌을 받겠다는 종에게 자신의 주인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실제 일이 있었다는 세종 때의 기록엔 위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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