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기담

아는척할정도의 얕고 넓은 한국역사지식

조선잔혹범죄사

조선시대 MeToo.

기묘담녀 2025. 3. 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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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에게 간통하려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녀의 눈은 손가락이 부러지고, 발뒤꿈치가 망가져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상황과는 다르게 독기로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한때 자신의 주인이었고, 자신을 강간하려 했으며, 그를 거부하자 자신의 몸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중년의 남자가 형틀에 묶여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며 우렁찼고, 한(恨)까지 서려있었기에 남자는 그녀의 증언과 꾸지람에 부끄러워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애꿎은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유효손의 강간 미수 사건

 

성종 19년, 추국장에서는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여성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남자 유효손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고 그 꾸지람에 남자는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땅바닥에 엎드려 남자를 꾸짖고 있는 여자의 이름은 효양, 한때 유효손의 노비였다.

유효손은 평소 효양의 미모가 마음에 들어 하루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그녀를 강간하려 했지만 효양은 그의 행동을 거절하며 도망쳤다.

결국 강간이 미수에 그친 유효손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 감정으로 그는 효양을 잡아 고문하기에 이르는데 먼저 그녀의 손가락을 모두 부러뜨리고는 불에 달군 쇠를 가져와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지저 버리며 힘줄까지 끊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망치지 말라는 의미로 그녀의 발뒤꿈치를 뚫어 끈을 연결해 묶어두고 걸을 수도 없게 만드는데 이 같은 그의 행동은 효양의 숙부였던 마마치에 의해 조정에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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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양일가의 노비 신분을 감하다.

 

이에 승정원이 말하길,

포락형(炮烙刑)은 국가에서도 쓰지 않는 것인데, 유효손이 감히 비자(婢子)에게 사용하였으니, 나의 생각은 그 여종의 당방 일족(當房一族)을 속공(屬公)시켜 그 나머지를 경계하게 하였으면 하는데 어떻겠는가?

 

포락형이란 유효손이 종인 효양에게 한 형벌 중 하나로 낙형이라고 하며 불에 달군 쇠로 죄인의 몸을 지지는 것이다.

보통 대역 죄인에게 내린 형벌이었지만 그 잔인함으로 인해 영조 때 폐지되었다. 이에 승정원은 효양일가의 신분을 노비에서 관비의 신분으로 바꿀 것(속공)을 건의했고 임금은 이에 따랐다.

관비도 노비의 신분이긴 했지만 국가에 속한 일꾼 중 하나였다. 이 말은 즉, 효양일가가 유효손의 손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효양은 유효손의 추국장에 나설 수 있었고, 그의 죄를 꾸짖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대부, 유효손을 옹호하다.

 

이는 오늘날의 미투 운동처럼 피해자가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성종의 해안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당시 사대부들은 오히려 이 같은 조치가 자칫 자신이 부리는 종들의 반란으로 이어질까 두려워 효양일가의 속공을 반대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던 종들은 자신의 집안에 속한 물건일 뿐이었고, 그들의 인권, 목숨 같은 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대다수의 성폭행 피해자분들은 자신의 피해를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혹시나 보복이 두려워, 또 주변 시선이 두려워서 말이다.

그들에게는 가해자들 앞에 떳떳할 수 있을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관심과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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