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녀(申淑女)가 시아버지 등을 시역했다는 죄로 고소장을 내어 옥사를 일으켰으니,
이는 실로 막대한 죄악입니다.
그녀는 작은 옥사 안에서 자신에게 내려질 처분만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비록 감옥이기에 몸은 갇혀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다음날이면 자신은 또다시 국문을 당할 것이다.
시아버지와 시 백부, 그리고 자신의 남편까지 죽게 만들었다는 죄명으로 말이다.
혼인을 하고 수년간 아이를 갖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건 시아버지도, 그렇다고 남편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더욱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그렇기에 민간에서 퍼지는 소문은 물론 용하다는 무당까지 찾아가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집안에 요사스러운 짓을 한다면서 자신을 내쫓았다.
뭐, 그것도 결국 자신을 내쫓으려 했던 명분이었을 태였지만 말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신숙녀는 조용히 흘리던 눈물을 닦아내며 홀로 있는 감옥 안 대들보에 줄을 걸기 시작했다.
남편과 시아버지를 저주한 며느리
인조 10년,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이해(李澥)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과 친했던 신하들과 함께 주상께 신숙녀의 죄를 다시 수사해줄 것을 청하기에 이른다.
이해가 말한 그녀의 죄는 저주로 인해 자신의 시아버지와 남편까지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복원의 아들 이점의 아내로, 혼인을 하고도 아이가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민간에서 내려오는 미신들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짐승을 죽이거나 피 묻은 속옷을 입고 다니며 아이를 낳기 위한 주술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인해 집안에서 쫓겨난 그녀는 결국 자신을 쫓아낸 집안을 저주하며 목 없는 시체를 파내어 집안에 두거나 하며 주술을 걸었고, 그로 인해 시아버지와 남편 등이 괴질에 걸려 사망하기에 이른다.
증거 불충분,
물론, 오늘날에도 저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고 믿어줄 수 있을까? 조선시대에도 그녀의 죄는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가 주술을 걸었다는 증거조차 찾지 못한 조정은 그녀를 무죄방면하였지만 이복원의 친척이었던 이해는 그녀의 무죄를 인정할 수 없었고, 결국 공신의 상소로 인해 사건은 다시 시작된다.
다시 시작된 수사 역시 증거는 없었고, 결국 무리한 수사는 그녀를 보필하던 종 둘이 추국장에서 사망한다.
결국 2차 수사에서도 그녀는 무죄로 풀려난다.
정해진 마지막
하지만 이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해는 죄가 없는 그녀를 무고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지만 그는 반정공신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를 따르는 신하들의 상소문이 끝없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신숙녀의 수사는 다시 시작된다.
그녀는 결국 옥에서 자살을 하고 마는데, 어쩌면 이해와 그들이 원하는 결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시각에서 그녀의 사건은 여러 가지로 의문점이 많다.
예를 들어 그녀가 저주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며, 또한 당시 처음 그녀를 고발한 이점의 동생이 간악하다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그녀는 그의 치부를 알아버렸기에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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