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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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잔혹범죄사

폐비유씨, 광해에게 자살을 권유하다.

기묘담녀 2025. 2. 1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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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하교하였다.
"문성 군부인의 상여가 서울을 지날 적에 치제하라."

 

인조실록, 인조 1년 10월 광해의 본 부인이였던 폐비유씨의 유해가 장사지내면서 상여가 서울을 지날때, 인조가 제사를 부탁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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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삶을 산 비운의 왕비

 

광해의 본처였지만 광해의 여성편력으로 인해 평생 사랑받지 못했던 비운의 왕비.

인조반정 당시 광해에 곁에는 김개시를 포함한 후궁와 상궁이 있었다. 머리가 좋았던 상궁 김개시, 광해에게 가는 문서를 담당했던 소용정씨는 인조반정이 벌어지자 자신의 상황을 파악해 자결했으며, 소용임씨는 광해가 강화로 유배를 가게 될 때도 같이 있었으며, 결국 강화도에서 사약을 받는다.

광해군묘, 폐비유씨와 함께 묻혀있다.

 

폐비유씨는 광해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왕비였지만 3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중 둘이 일찍 죽었다.

 

둘째였던 이질이 남았지만 이질도 유배지를 탈출하다 자결하게 되고, 유씨는 자신의 마지막 혈육이 죽자 병을 얻고만다.
둘째 이질이 어쩌면 그녀에겐 마지막 삶의 끈이였던건 아닐까?


어느날.. 그녀는 광해에게 고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녀는 광해에게 같이 자결하기로 요청하지만, 광해는 그렇게 목숨을 쉽게 버릴 수 있었던 인물이 아니였고, 폐비유씨의 간청을 거부한다.

불행한 삶을 살다 결국 홧병으로 자신의 아들이 사망한 6개월 뒤 사망한 폐비유씨.

그녀의 불행한 삶을 살다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엔 어떤 기분이였을까?

너무 힘든 세상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모든 짐을 내려놓는 순간을 홀가분하게 느꼈을까?


여담이지만, 후에 광해군을 "혜종" 이라고 하자 요청하지만 폭군이라 기록되었고 조선이란 국가가 인정하지 못했던 왕이였기에 광해군으로 봉해지고 만다. 하지만 광해군묘비엔 "혜종"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게 되는데  그 뜻은 "은혜 혜(惠)" 로 자애롭다 은혜롭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폭군이였던 광해에게 어울리지 않은 시호지만, 어쩌면 우리가 아는 광해의 모습이 다는 아닐꺼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임진년 백성들에게 그는 어진 왕이였으며, 왕위를 계승 후 백성을 위한 법을 반포했던 그의 모습이 어쩌면 그의 본 모습은 아니였을까? 어차피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일 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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