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닭이 방 대들보 위에 있다[金鷄屋上樑]
황탕의 아들 황건중은 기생집을 제집처럼 드나들 정도로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황건중의 집안에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별장이 철원지방에 있었고 황건중은 그 별장과 본가를 오가며 지내기를 즐겼는데 그렇게 생활한지도 일 년쯤 되던 날이었다.
어느 날, 혼자 잠을 청하려던 황건중의 방안으로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황건중은 그 모습에 놀라고 말았는데, 근래에 보기 드문 정말 아름다운 미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건중은 마치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모른 척 이부자리를 깔고 자리에 누웠다.
귀신의 유혹을 뿌리치다.
황건중은 왜 그녀를 무시했던 걸까?
이유는 그녀가 걸치고 있던 옷 때문이었다.
그녀는 겨울에 추운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게 얇은 삼베옷을 입고 있었는데 황건중은 그모습에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무시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는데, 그녀는 황건중의 반응은 상관없다는 듯 방을 나가지 않고 그에게 다가와 그를 유혹하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날 이후 매일 새벽이면 그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황건중은 그녀의 유혹에 몇 번이고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그녀가 귀신이라고 생각했기에 만약 자신이 넘어가면 끔찍한 일을 당할거라 믿으며 참아내었는데 이 삼베옷의 귀신이 어찌나 끈질기던지 부인이 옆에 있으면 그 반대쪽에 누웠고, 여종을 그쪽에서 자게 하자 이번엔 그의 머리맡에 나타나 그를 유혹했다고 한다.
궁인 귀신, 결국 화를 내고 떠나다.
며칠째 똑같은 유혹에 힘들어진 황건중은 결국 도사와 무당을 불러 굿을 하려 했고, 그제야 귀신은 화를 내며 그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당신을 괴롭히려 한 것이 아니요 다만 당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여 죽어서나마 그 덕에 보답하려 한 것입니다"
이 무슨 말인가? 조상의 은혜를 갚는다니? 황건중이 다시 묻자 귀신이 대답은 이러했다.
자신은 본디 태봉국의 궁인이었는데 태봉국이 망할 때 죽었고, 그저 길가에 버려진 시신을 황건중의 조상인 황계윤이라는 자가 수습하여 묻어주었다고 한다. 귀신은 그 은혜의 감사하여 보답하고자 나타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황건중은 그녀의 울먹임에도 쉬이 마음을 열지 않았고, 결국 귀신은 황건중을 포기하고 떠나기로 하는데 황건중은 그녀에게 떠나기 전 자신의 길흉을 물었고 궁인 귀신은 단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누런 닭이 방 대들보 위에 있다[金鷄屋上樑]"
황건중은 당시 그녀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한참이 지나 그는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국법을 어기는 바람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가 옥에 갖혀 자려고 눕자 그제야 그 귀신이 한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감옥의 대들보 위엔 누런색의 닭이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진짜 누구였을까?
위의 이야기는 어우야담에 수록된 욕정에 가득한 귀신에 대한 이야기다.
태봉국은 왕건이 고려를 세우자 쫏겨난 궁예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다.
당시 그녀는 개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를 굉장히 무서워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았을 때 그녀는 인간으로 둔갑하여 궁인 행세를 했었던 일야호(一野狐,꼬리 하나 달린 여우)가 아니었을까라고 어우야담은 추측하기도 하는데 여우는 남자의 양기를 빨아먹고 산다고 알려졌으니 기생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황건중이 어쩌면 탐스러운 먹잇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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