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가던 조광원(曺光遠)은 날이 어두워지자 평안도 어느 마을에서 묵게 되었다.
조광원은 고을 관리에게 객사로의 안내를 부탁하였다.
"저, 그것이... 저기 여염집에 잠자리를 봐 두었으니, 그리 드시는건 어떠신지요?"
"엄연히 나라에서 객사를 만들어 두었는데, 왜 다른 곳을 쓴단 말인가? 어서 객사로 안내하게."
관리는 조광원의 말에, 잠시 머뭇하다, 어쩔 수 없이 그를 객사로 안내하게 되었는데, 객사를 본 조광원은 할말을 잃고 말았다.
객사는 관리가 되지 않았던지, 먼지가 쌓이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그것이... 오랫동안 쓰는 일이 없다보니, 보시다시피 객사가 마치 폐가처럼 되어 버려서 말입니다."
"..."
조광원은 관리의 말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전 한 말도 있기에 이제와 발길을 돌리자니, 양반으로써 체면이 살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두눈 질끈 감고 객사안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걸을때마다 바닥은 무너질듯 삐걱대긴 했지만, 대충 치우고 이불을 깔자, 그래도 나름대로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하루종일 걸음을 걷던 그는 눕자마자 이곳이 폐가와 같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잠이 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잠에 들었던 걸까?
삐걱....삐걱...
무언가 이질감있는 소리에 눈을 뜬, 조광원은 어두운 천장한쪽에서 움직이는 듯한 무언갈 보고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고 만다.
조광원을 놀라게 한 무언가는 천장 대들보에서 하나둘씩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하자 조광원의 눈은 더욱 커지고 만다.
사람의 신체, 그것은 팔, 다리, 머리, 가슴, 배 순으로 바닥에 떨어져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어느순간 꿈틀거리며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크헉!"
신체가 합쳐지며 묘령의 여인의 모습이 되자, 조광원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만다.
"흐윽..흑흑."
그가 놀라 소리를 치자, 여인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흐느끼기 시작하였고, 그 모습에 조광원은 큰소리로 호통을 치기 이른다.
"그대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사람을 놀래키는가!"
그의 물음에 여인은 울음을 멈추고 그간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다음날,
"이봐, 거적은 준비했는가?"
관리는 익숙한듯 시체를 치우기 위해 객사로 걸음을 옮겼고, 그순간 나타난 조광원의 모습에 깜짝놀라고 말았다.
조광원은 화가 난 상태였다.
지난밤, 여인의 귀신은 자신이 고을의 기생이었는데, 관노에게 겁탈당하려할때 저항하자 그가 그녀를 죽여 큰 바위밑에 깔아 사지가 토막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관노와 그와 관련된 모든이들을 잡아 벌을 주고, 처형하였고, 여전히 바위밑에 있던 그녀의 시신은 잘 거두어 장사를 지내주었더니 그 뒤로는 그 여인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홍만종(洪萬宗)이 지은 야담집 『명엽지해』에 등장하는 귀신으로, 억울함을 고하는 기생의 귀신이라는 뜻으로, 얼핏 장화홍련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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