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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겉핥기

우리 종각(역)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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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시에 종각역앞에서 봐!

흔히 약속의 장소로 이용되는 곳, 종각. 이곳은 새해가 밝으면 이곳에서 종을 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곳의 정식명칭은 보신각으로 1895년 고종이 붙힌 이름입니다.

종각이 새해를 알리는 종을 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종각이 어떤 이유로 세워졌는지 모르는 이들은 많을듯한데 종각앞에 적혀있는 안내판만으로도 알수 있을 탠데.. 꼭 한번 종각에 가게되면 읽어보자.

 

도성의 중심, 종루였다.

조선시대 보신각, 1층짜리 종각이였으며 바로 앞에서도 난전이 이루어졌다.

 

종각은 조선시대 도성(한양)을 지으며 만들어진 것으로 본디 목적은 성의 문을 열고 닫을 때 치던 종이였다고 합니다. 도성을 지을때는 한가운데에 축조되었으며 처음의 모습은 지금의 보신각처럼 2층구조의 '종루'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진년에 벌어진 왜란으로 인해 불타 없어진것을 다시 축조되었지만 나라가 어려웠던지라, 지금의 모습이 아닌 1층구조의 작은 누각이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곳을 종각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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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普信閣)이라 명하다.

 

고종은 그곳을 보신각(普信閣)이라 명하였는데. 조선의 국교인 유교의'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각 성문에 이름으로 명하고, 마지막 '신(信)'을 종각에 붙여 완성한 것으로 성문과 종각은 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성의 중앙에 위치한 성문의 열고 닫음을 알리는 종이라는 존재는 성의 중심을 잡는 역할로서의 중요도가 있었던 듯합니다.

지금의 2층구조의 종루가 본래의 모습이였다.


친근했던 종각

 

지금과는 달랐던 모습의 종각은 조선 중반에서는 종각 바로 앞에서 난전이 벌어질 정도로 친근했던 장소였습니다. 도성(한양)의 중심이였으니 시장도 열리고 만남도 잦았던걸로 추측되는데 그러고 보면 지금의 종각도 약속의 장소로 백성들에게 쓰이고 있는거 같아서 뿌듯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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