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로 시작된 비밀스러운 사랑
이튿날에 어리는 머리를 감고 연지·분을 바르고 저물녘에 말을 타고 내 뒤를 따라 함께 궁으로 들어오는데, 어렴풋이 비치는 불빛 아래 그 얼굴을 바라보니, 잊으려도 잊을 수없이 아름다웠다.
상왕 태종은 눈앞에 양녕대군을 향해 화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네가 도망했을 적에, 주상이 듣고 음식을 전폐하며 서러운 눈물이 그치지 아니했다. 너는 어찌 이 모양이냐. 너의 소행이 너무도 패악하나, 나는 특히 부자의 정으로써 가련하게 여기는 것이다."
양녕은 사사로이 궁안에 여자를 들이고 그 여자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한 죄로 유배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배지를 빠져나온 죄로 궁으로 끌려온 참이었다.
양녕은 아비의 말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자신의 거처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띵~띠~잉~"
양녕대군의 거처 앞에 지키던 내시는 방 안에서 들리는 비파 소리에 나지막이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혼나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비파나 튕기며 여흥을 즐기는 모습이 내시가 보기에도 자연스럽게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에잉, 천성은 고칠 수 없다더니.. 여전하네.. 여전해"
내시의 혼잣말 뒤로 유난히 슬픈 선율의 비파 소리만이 양녕대군의 적막한 거처 안에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남의 첩을 납치해, 숨기다
조선 초기, 세종의 형제였던 양녕대군은 친우들과 여흥을 즐기던 도중 악공이었던 이오방에게 어리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는 미모도 뛰어날 뿐 아니라 그 재주도 뛰어나다는 말에 양녕대군은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선물까지 보낸다.
문제는 그녀는 이미 원로대신이었던 곽선의 첩이었다는 것이었다.
왕족이 다른 이의 여자를 건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처음에 어리라는 여성도 그가 부담스러워 곽선의 양자였던 이승에게 말하지만 양녕대군의 집요함에 그만 어리를 내어주고 만다.
왕자가 얼굴을 들이밀고 부탁하는데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렇게 만난 양녕과 어리는 그날 밤을 함께 보내고 사랑에 빠져버렸는데, 결국 양녕은 어리를 데리고 궁안에 몰래 들어오게 된다.
태자 신분, 그리고 심지어 유부남
물론, 넓은 궁궐 안에서 둘의 사랑은 몰래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문제는 양녕대군이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었고, 또한 태자의 신분이었다는 것이었다.
몰래 한 사랑은 결국 왕이었던 태종에게 들키고 마는데, 결국 어리는 궁 밖으로 쫓겨난다.
안 그래도 다혈질이었던 태종은 아들의 비행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는데 결국 그 화는 어리라는 여인을 양녕에게 소개해준 악사들을 참수하여 저잣거리에 거는 것으로 나타나고 만다.
하지만 양녕은 본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양녕에게는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으로 벌을 내리는데 소개했다고 참수한 것에 비해서는 참으로 가벼운 벌이 아닐 수 없다. 뭐, 왕이 그리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어리, 목을 매다.
어리가 궁을 나가고 점점 양녕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기 시작했는데, 상사병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건 다름 아닌 양녕의 장인이었다. 그는 사위의 모습이 안타까워 딸의 시종으로 위장하여 어리를 다시 궁으로 들이고 마는데, 자신의 딸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이를 사랑하여 상사병까지 얻은 사위가 장인은 뭐가 그리 안타까워 도왔던 걸까?
후에 결국 태종은 어리가 다시 궁에 들어왔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장인을 탄핵하고 양녕대군을 유배 보낸다.
불행의 시작은 아마 여기였을까? 당시 태종은 상왕으로 올라가고 세종이 왕의 업무를 보고 있었기에 세종은 자신의 형이었던 양녕의 유배지에서의 편의를 엄청 챙겼지만 양녕에게는 모자랐던 건지 유배지를 이탈하고 만다.
그의 비행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결국 궁에 남아있던 어리에게 쏟아졌고 결국 손가락질과 욕설을 견디다 못한 어리는 목을 매 자살하고 마는데, 처음엔 비록 일방적인 구애와 납치로 시작되었지만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양녕대군의 곁에 남은 어리는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국 비극이 되어버린 사랑
다시 돌아온 양녕의 기록은 아비였던 태종에게 꾸지람을 듣고도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비파를 연주하며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는 기록을 마무리가 된다.
어쩌면 양녕의 그날의 비파 소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비파 소리로 자신의 울음소리를 감추고 싶었던 양녕의 비극적인 사랑의 음률을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