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 사도세자
네가 왕손의 어미를 때려죽이지 않았느냐
(汝搏殺王孫之母)
영조 38년, 사도세자에 대한 고변이 있던 날, 뜰앞에 엎드린 세자에게 영조가 한 첫번째 말이다.
사도세자, 우리는 흔히 아비였던 영조의 사랑을 받지 못해 불행하게 삶을 살다가 결국 뒤주에 갇혀죽은 비운의 세자라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아비였던 영조와 아들이였던 정조의 노력이 있었다.
사도세자가 죽인 무고한 사람이 100여 명 정도 된다?
정조가 읽어보고 "대천록"이라고 이름을 바꾼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유명한 영국의 살인마 「잭더리퍼」도 5명, 미국의 살인광 「테드번디」도 30여명 정도의 여성을 살해했다. 그런데 그보다도 한참이나 많은 100여명을 살인한 사람이 사도세자라니.. 쉽게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기록되어 있는 그의 최초의 살인은 사도의 옷 시중을 들던 내관인 김한채였다.
사도세자는 원래도 옷을 자주 갈아입기도 하고, 한번 옷을 입을 때도 여러번의 옷을 마음에 들때까지 입어보기로 유명했다. 그날도 그렇게 옷을 여러번 갈아 입고 있었고, 사도는 도저히 맘에 드는 옷이 없었으리라..
결국 히스테리가 폭발한 그는 옆에 있던 내관을 칼로 베어버리고 만다. 사도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쓰러진 내관의 목을 잘라 한손에 들고는 궁궐을 돌아다니며 총 6명을 더 죽이고 만다.
어미와 아비까지 죽이려 했던 세자
사도의 살인행각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는데, 사도가 아끼던 후궁이였던 "빙애"를 살해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칼이나 무기를 들고 죽인것이 아니라 맨손으로 구타하여 죽이게 되는데, 빙애곁에있던 이제 돌이 갓 지난 아들 "은전군"도 칼에 맞았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해경궁 홍씨도 사도가 던진 바둑판에 맞아 눈밑이 찟어지는 상처를 받았으며, 자신의 어미인 영빈이씨까지도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게 된다.
결국 별감이였던 나경언의 고변으로 이어지는데 , 그 고변으로 인해 나경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만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사도세자가 영조까지 죽이려 한다는 고변이 포함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친어머니가 죽여달라고 요청하다.
제 아들을 죽여서 나라를 보전하소서..
자신의 아들을 죽여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까?
결국 영빈이씨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여달라고 영조에게 간언하게 되고 그렇게 패악이 극에 달았던 세자는 뒤주에서 죽임을 당한다.
영조일기의 사도세자관련 내용들은 승정원일기를 포함하여 칼로 도려내고 지워진 것들이 많다.
그래도 아들이 연쇄살인마라는 기록이 남지 않길 바랬던 영조와 아비의 치부를 감추고 싶었던 정조의 노력이였으리라.
어릴적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보여 아비의 예쁨을 받던 사도가 훗날 얻은 광증과 울화병은 과연 아비의 높은 기대로 인해 사랑 받지 못했던 아들의 분노가 그렇게 만들었던 걸까? 아니면 사도세자는 요즘 흔히 말하는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였던건 아닐까?
사도세자의 다른 모습에 대한 의견을 적어보았다.